건축 형태 연구 – 청계천의 다리

프랑스 미술사학자 앙리 포시용은 자신의 책 ‘형태의 삶’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태가 그 자체를 의미한다면, 기호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한다.”

1.27개의 청계천의 다리들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따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은 본래 낙산, 인왕산, 남산 그리고 북악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생긴 자연하천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청계천 주위에 시전행랑과 민가가 밀집해 있었기 때문에 생활하수를 위한 하천으로 이용되었고, 자연히 나라에서 관리하는 치수사업의 주요 관리대상 중 하나였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 조선시대 청계천의 이름인 ‘개천(開川)’인데, 이는 원래 하천 정비를 위한 토목공사를 지칭하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청계천’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천변을 따라 형성된 판자촌으로 인해 청계천의 오염문제가 심각해졌다. 결국 1955년 광통교 상류를 시작으로 복개공사가 결정되면서, 오수가 흐르던 하천 위에 만들어진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는 근대화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면서 청계천을 덮고 있던 인공구조물은 개발시대의 흉물로 인식되었고, 2003년 서울시는 청계천의 복원을 결정한다. 청계천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양쪽 제방을 이어줄 수 있는 옛 다리의 복원과 새로운 다리의 건설도 함께 진행되어, 현재 청계천에는 총 27개의 다리가 존재한다.

2.기능 혹은 장소로서의 다리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다리들은 ‘장애물을 넘기 위한 이동로’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또한 이것이 다리의 가장 일반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다리’라는 주제는 건축물보다는 구조물로 인식되어 왔으며, 다리를 설계할 때 형태와 공간보다는 구조나 건설재료가 더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건축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다리들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 청량각(淸凉閣)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외송마을과 송광사를 이어주는 송광사안길이 신평천과 교차하는 곳에 세워진 청량각은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단순히 장애물을 넘기 위한 구조물이 아니다. 돌로 된 교각과 그 위를 덮는 목재 지붕은 사방으로 열린 공간을 한정하며, 이 열린 공간은 송광사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계곡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장소가 된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르노강에 있는 베키오 다리를 보면, 다리의 양 옆에 평행하게 세워진 건물들로 인해 중심에 선형의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이 선형 공간은 아르노강을 건너가기 위한 이동로가 되는 동시에 피렌체의 두 지역을 강 위에서 묶는 도시적 장소가 되면서 시장의 기능을 수행한다.

3.이동통로의 다리들

이 외에도 국내외의 여러 다리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놓이는 곳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여러 성격들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다리를 이동로로만 이해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모든 다리를 장소로만 이해하면서 여러 성격들 중 한 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다리’라는 주제의 풍요로움을 감소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4.장소로서의 다리들

예를 들어 청계천의 다리들 중 새벽다리나 나래교는 베오개다리나 마전교처럼 주요 교통로를 잇는 보차다리가 아니라 청계천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의 주요 시장들이 마주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보행자 전용 다리라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다리의 성격들 중 특정 장소로서의 성격을 수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다리들이다. 그러나 서울시설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막 구조를 이용하여 시장의 천막을 형상화한 새벽다리는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과 향수를 연출했다고 하며, 아치구조와 케이블을 이용하여 나비의 힘찬 나래짓을 형상화한 나래교 역시 인근 동대문 의류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결국 이 두 다리의 형태는, 그 미학적 수려함에도 불구하고, ‘다리’라는 주제의 내적 논리로부터 나온 형태, 다시 말해 이동로나 혹은 특정 목적의 장소를 만드는 것과 관련된 고민으로부터 나온 형태가 아니라 다리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외부의 논리로부터 나온 형태인데, 그것은 사실 누군가 미리 말해주기 않는다면 알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개’라는 글자를 볼 때, 그 글자의 형태인 ‘ㄱ’과 ‘ㅐ’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암기한 외부의 다른 무언가, 즉 개라는 동물을 떠올리는 것처럼, 다리의 형태를 기호의 개념과 뒤섞어 버린 작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미술사학자 앙리 포시용은 자신의 책 ‘형태의 삶’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태가 그 자체를 의미한다면, 기호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의미한다.”

Leave a Comment